# 전화드렷던 김미옥입니다 (2006년 4월28일 전화, 메일 받고 답장한 후 온 글)
회신답변 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함경북도 온성군이 고향이고..저는 함경북도 회령오산덕에서 73년도에 태여낫습니다
어머니혈육은 조선에 모두계시고 아버지의 혈육은 해방이후 조선에서 중국에와 계시므로 왓다갓다할수잇는 조건이 기재되여 중국에 막통과할수 잇엇습니다
따라서 저는 중국에 학교를 다닌적도 잇고 학교를 다닌면서 다른학생과달리 조선국적이다보니 넥타이도 매보지못하고 당원같은건 꿈도 꾸지못햇습니다
그리하여 부모님들은 나를 다시 평양으로 데리고가 공부시킬려고 갓지만 또한 조선에서는 중국왓다갓다하기에 여러모순을 제기하여 국민학교에 진합하지못하고 자비로 조금씩 공부하는 길밖에 없엇습니다 9살에 부모님들의 노력하에 피바다가극단의 지도원선생님의 도움으로 예술의 길로들어서는 이시기부터 저의 운명이 시작된것같습니다 배움의 길에들어서서 약 15살까지 공부하는 과정에 서도 부모님들의 동반자로 인해 중국에도 몇 번 왓다갓엇습니다
16살에 8.15범민족 대회가 열려 저또한 력사적인 자리에 1차 2차 행사에 한국에서 오신 림숙영 하고 문귀현 신부님여러나라 대표들과 판문각에서 단식투쟁 5일만에 저는 쓰러지고 또한 그당시 나이는 어려도 통일이라는 념원으로 판문각에서 <통일아 어서 오너라>이노래를 목터지게 부르고 또불럿습니다 이후 18살에 4.15봄예술축전이 열려 저 또한 가수로 참가하여 92년도 93년도 에 3등공 노력훈장을 수예받앗습니다 그로인해 각여러대표단예술축천에서 미인선발 대회로 6명 뽑혀 예술축기를 올리는 일도잇고 김일성 주석님과 기념촬영도 하여 조금은 우쭐하는 시기엿습니다 하여 여러 기층의 지도원들의 많은귀여움도 받고 저를 지지해주는 분들도 잇엇습니다
어릴적엔 정말 곱게생겻다는 소리도 많이들은것같습니다 모두 보고또보고 ...저를통일의꽃이라고 불럿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한지도원으로부터 중국에서 국적은 북한국적대로 살되 행사가 잇을때마다 나서라는 통지를 받음으로 저또한 중국에서 차별하는 점에 대해 중국엔 안가고 로씨야로 가게되엿습니다 그당시 로씨야길로 인해 부모님들과의 영원한 리별이 될줄이야... 그때 저의나이는 22살엿습니다 위로는 오빠 두분이 계시고 모두 가정이 잇고하여 또 해외공민으로 중국에 수시로 드날수잇는조건이입니다 로씨아에 도착한 저는 언어도 안통하고 낯설은 타국에서 정착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힘든고비엿습니다 나의 자유를 위해 이길을 선택햇다하지만 그로 인해 부모님들을 돌아가시는것도 못보고 방화의길에 나서 타격적인 현실이 가만히 두지않고 러시아 마피아 조직에 잡혀 그동안 어떻게 모은돈도 다 빼앗기고도 놔주지 않기에 기회를타 도망하여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겨우 도착하여 사실그대로 저살려주세요 하여 제공민증 번호를 확인하여 여권을 재발급해 주재원 두명을 파견해 중국 만주리까지 안내하여 지금 현재까지 중국에 잇습니다
그동안 부모님들다 돌아가시고 ...중국에와서 알앗지만 친척들도 궁금하고 북한으로 들어가자고 중국공안에서 내주는 증명을 내여 국경을 넘엇습니다 하지만 세관에서의 랭절한 태도와 ...
발도 못딛게 함으로 회령세관 다리에서 밤을 샛습니다 아침에 세관일군들이 다리에서 밤을보낸 나에게 가라는 말을 던지고는 돌아갓습니다 인제 서야 더욱 강렬해지는 저도 힘들때도 잇엇지만 그래도 이적까지 조선국적을포기하지않고 잊지 않고 잇엇다만 저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 한시절 조국통일에 적은힘이나마 노력도 햇고 그동안에 행사에 못참가하고 하여 가라고 하면 난 국제고아입니까 내가 갈길은 어디입니까 ? 저정말 잠이안오고 할적엔 하늘을 바라봅니다 ....
현재 저는 남자친구와같이 연변에 잇습니다 또 남자친구는 내가 북한국적인것도 접수하고 살아갈 용기를 잃지말고 열심히 꾿꾿히 살자고 위로도 해주면서 저에게 힘을 주엇습니다 저도 남자친구의 따듯한 모습이 감동되고 얼마나 고마운지...하여간 이러는중에 우리는 열심이 살아볼려고 노력은 햇지만 너무 애로가 많고 또 많은 힘이 붙이는것을 정말로 감당하기가 힘들엇습니다 그래도 남자친구는 한마디 불평을 저에게 주지도 않고 해서 저는 더욱 미안한감을 느꼇습니다 하여 제가 고민끝에 남자친구하구 엇잡히 이렇게 피곤하게 우대도 못받고 근심이 태산같이 살바엔 한피줄 동족인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시도 할려고 토론하니 남자친구도 이렇게 사람대접을 못받을 바엔 그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면서 저를 도와 이렇게 지지하면서 위로해 주엇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하루빨리 가고 싶은 욕망이 채찍하여 재촉합니다
지금의 북한은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이다 못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 걸고 강을 건늡니다 저의 외할아버지와 둘째 외삼춘 두분이 굶어 죽엇답니다...
중국에서는 북조선사람잡으면 장례금을 준다는 말을 접하여 혈안이 되고 우리들이 갈곳 정녕 그 어디겟습니까?
만약에 제가 행운 되여 대한민국에 잇는다면 저의 현실된 생활도 잇겟지만 나라에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일이라면 적은 힘이나마 거름이 되겟습니다
8번째의 질문에 의하면 중국의 한국행을 도와준다고 길은 많습니다만 허나 과정은 다 어디가 팔리우는지... 또한 첩첩난관이므로 안전하게 한국으로 갈수잇다면 그경비는 마련할수잇습니다.
경비를 마련하여 대한민국을 갈려면 시간은 어느정도로 걸리는가요?또한 저의 상황을 보시고 판단하여 주십시오 제가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공민증을 발급받을수잇는 여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대한공민으로 말입니다
처장님 여기까지 봐주시는 과정에 많은로고 끼쳣습니다
여기까지서술하는 저는 지금 많은서러움에 북받혀 눈물범벅이대잇습니다
저 도와주세요 저의희망이자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처장님 !!!
기도하겟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빠른 시일 내에 답장을 주셧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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