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러시아)=김성휘 기자 입력 2017.09.06. 18:16
"적어도 북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하다" (문재인 대통령)
"아무리 압박해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한러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대북 경제봉쇄 동참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거절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양 정상은 북핵에 외교적 해법이 중요하다는 원론에 공감했을 뿐이다. 대북 제재에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 국제공조가 절실한 문 대통령으로선 상당한 어려움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고 작심한 듯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멈출 수 있는 지도자는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두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에 원유를 공급한다.
문 대통령은 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북핵해결 로드맵을 강조하는 데 대해 "러시아가 제안한 근본적 로드맵을 북한이 진지하게 검토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도발이 멈춰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북한이 최초의 6자회담에 응하지 않아 중국이 원유공급을 중단했고 그 후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했다는 역사적 경험도 제시했다.
한국으로선 상당히 절실한 어조로 러시아에 제재 동참을 강력 요청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4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도 원유공급 중단 필요성을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꿈쩍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1년에 4만톤, 미미한 양의 석유를 북한에 수출할 뿐이고 원유를 중단하면 병원 등 북한 민간 피해도 우려된다고 했다. 민간피해는 우리 정치권에서 그동안 대북 원유공급 중단이란 강력 봉쇄카드에 대해 말하곤 했던 논리다. 북한은 1년에 100만톤 이상의 원유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북한 제재에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의 '레버리지'가 클 것으로 봤다. 원유뿐 아니라 북한의 외화벌이 차원에서도 러시아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단순 저임금 일자리가 중국에 많다면 러시아에는 벌목 광산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가 있다. 외교부 자료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숫자는 유동적이라며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단 한해 3만여명이란 추산이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반응으로 일단 '북방'의 대북제재 동참은 어려운 일이 됐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한러간 이해와 입장이 달라 예견된 측면도 있다. UN안보리 이사국인 러시아는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과 전통적 대립 관계다. 동북아 지역으로 좁혀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압박·위축시켜 미국·일본의 세력권과 러시아 사이에 완충지대가 약해지는 것도 매우 불편한 일이다. 중국도 북한제재에 대해선 러시아와 결이 같다.
미·일과 공조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입장차를 좁히기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이 적어도 대북제재에선 시작부터 난항에 빠짐에 따라 대북 압박 구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미지수다. 이 때문인지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 나선 문 대통령의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을 기다리게 해 '지각대장'이란 별명을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약속보다 30분 늦게 현지시간 오후 1시30분경 회담장에 나타났다. 단독회담이 30분 밀렸고 확대회담은 예정보다 50여분 늦게 시작했다. 현지시간 오후 4시45분 예정됐던 한몽골 정상회담은 오후6시30분으로 당초보다 1시간45분이나 밀렸다. 이런 해프닝은 한러의 대북공조 엇박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 논의가 막힌 데에 "문 대통령이 충분히 본인 의견을 개진했고, 푸틴 대통령도 본인의 의견을 말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는 자국 내 북한 노동자들도 숫자가 많지 않다고 하는 등 (원유나 외화벌이 차단이) 러시아에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어떻게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공감했다"며 "양국 외교부 장관, 대통령끼리도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톡(러시아)=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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